1팀 아이들에게는 마지막 탐사 날이자 2팀 친구들 대부분이 기다리던 파리 탐사가 있는 날.
하늘이 무척 흐리다. 그간 잘 도와줬던 날씨가 오늘따라 말썽이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고 난 후 맑을 줄 알았는데, 변덕이 심한 유럽 날씨에 어쩔수없이 우산을 챙긴다.
기대 많았던 파리 탐사인 만큼 기운내서 일어나본다.
호스텔 일층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기다린다.
부페식으로 나온 메뉴에는 파리의 바게트와 한국에서는 귀한 종류의 햄이 나왔다.
바게트가 딱딱해서 싫어하는 친구들은 부드러운 식빵에 잼을 발라 먹으며 탐사를 준비한다.
파리 탐사에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그 안에 둘러보아야할 곳이 많기에 거리에 어젯밤의 흔적을 치우는 사람들을 지나쳐 아직 해도 뜨기 전인 아침 여덟시경 숙소 근처 파리 동역으로 향한다.
가는 빗방울이 옷 위로 툭툭 떨어진다. 다행히 도보로 오분 거리라서 쉽게 지하철에 오른다.
로마 이후 다시 이용하게된 대중교통.
낭만의 도시지만 파리에도 다른 모습이 있었다.무임승차하는 사람들에게 제재를 가하지 않는 직원들, 퀴퀴한 냄새가 퍼지는 오래된 파리의 지하철을 탄 아이들은 아이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 지하철만큼 좋은 게 없다고 말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유럽에 있다 하더라도 이럴때면 하루에 몇번씩 우리나라가 그리워진다.
루브르 박물관까지는 지하철로 한 번만에 금세 도착할 수 있다.
비가 내리고 있어 대장님이 먼저 가서 티켓과 입장하는 곳의 위치를 알아본 후 다시 아이들과 함께 이동한다.
길게 늘어서있는 줄 대신 미리 예약한 표로 기다림 없이 루브르의 투명한 피라미드 아래로 내려갈 수 있게 됐다.
파리는 곳곳이 테러의 상처로 얼룩져있는 곳이기도 해서 그런지 공항 검색대처럼 웬만한 명소에서는 짐 검사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전날 가이드색에 칼이나 위험한 것들을 모두 빼놓은 아이들.
다행히 모두 짐을 잘 챙겨둔 모양이다.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해 드디어 루브르 박물관 안으로 향한다.
제대로 보려면 사흘이 걸린다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루브르 박물관.
아쉽지만 시간이 짧기에 우리는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것 세 작품을 우선 보기로 한다.
가장 처음에 만난 모나리자.
방 안의 중앙에 위치한 그림, 모나리자 앞에서만 사람들이 카메라를 들고 붐비고 있다.
아이들도 사람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모나리자에게 눈을 맞춰본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 반대로 향해도 아이들에게 눈을 떼지 않는 모나리자.
책에서만 보던 그림이 눈 앞에 있는게 신기했는지 “이거 진짜 그림이에요? 진품이에요?”하며 물어오는 아이들이다.
다음으로 유명 브랜드 나이키의 모티브가 된 니케의 조각상으로 간다.
모나리자를 보러 올라오며 지나치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거대한 크기로 위엄을 자랑하는 니케는 양 팔을 벌리고 날개를 활짝 펴고 있다.
섬세하게 떨어지는 옷자락을 따라 다시 계단으로 내려가 마지막으로 우리는 밀로의 비너스를 찾았다.
‘미’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는 비너스상. 수려하고 뚜렷한 이목구비와 세세한 근육의 표현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카메라를 들고 담기 바쁘다. 차분히 살펴본 후 사십여분간 자유시간을 얻는다.
무척 짧은 시간동안 아이들은 그래도 보고 싶은 걸 찾아 간다.
워낙 거대한 박물관이라 일정상 천천히 보지는 못하기에 그 아쉬움을 뒤로한 채 다음을 기약한다.
루브르에서 나오니 어느덧 점심시간.
우리는 미리 예약해둔 달팽이 요리 전문 식당으로 걷기로 한다.
여전히 비가 내린다. 우산을 펴고 친구와 함께 쓰며 나란히 파리의 거리를 걸어 본다.
열심히 걸은 아이들 덕분에 열두시도 안돼서 도착한 레스토랑.
안에는 달팽이 요리를 먹으러 온 사람들의 예약석이 가득하다.
아무래도 맛집이 맞는 모양이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웨이터가 곧 맛있는 파리의 빵과 달팽이 요리를 들고 나온다.
보는 것 만큼이나 먹는 게 중요한 우리 아이들에게 달팽이 요리의 맛을 물었더니,
생각보다 맛있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생각보다 크기가 크고 맛도 괜찮다는 말에 안심이다.
달팽이에 함께 나온 바질 소스가 비린 맛을 조금 덜어준다.
소고기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과 파이까지 나와주니, 오늘 남은 탐사도 힘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다시 걸어서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향한다. 날이 좋지 않다. 그래도 천천히 걸으며 파리의 시내와 건물을 눈에 담아본다.
걷다 보니 스트라스부르에서 봤던 노트르담 성당과 비슷한 형체가 서서히 드러난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본다. 이제껏 봐온 성당 중 관광객들로 가장 빼곡한 곳이다.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 대성당보다 아름다움은 덜하지만, 파리에 있는 덕분인지 수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다.
처음으로 마주친 가장 거대한 성당의 규모와 내부에서 바라본 형형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 그리고 조각상들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성당에서 나올 때 다행히 비바람이 조금 멎는다. 센느강을 따라 오르세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르세에 도착하니 어느덧 두 시.
역시 미리 예약해둔 덕분에 빠르게 미술관 안으로 들어설 수 있다.
비바람과 추위에 걷다 들어온 아이들에게 미술관 안은 더없이 아늑하다.
다리 아프고 힘들다며 십 분만 쉬고 둘러보러 가겠다는 아이들은 오래전 기차역이었던 아름다운 미술관 곳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몸이 노곤하지만 잠깐의 휴식 후에 좋아하는 작품을 찾아 떠나는 아이들.
엊그제 암스테르담에서 반 고흐 미술관에 다녀왔는데 이곳에도 그의 작품들이 전시되어있다.
파스텔톤 하늘색 물감으로 여러번 덧칠된 그의 자화상 그리고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에 뿐 아니라 고흐 미술관에서 봤던 그의 화풍을 다시 만날 수 있어 반갑다.
오르세 미술관에서 가장 눈여겨 볼만한 곳은 꼭대기 층이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이전 역사였던 공간의 투명한 시계탑 창밖으로 몽마르뜨 언덕과 파리 전경이 한눈에 담긴다.
미술관 안에는 모네와 마네 등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이 즐비하다.
그들이 한 순간 순간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주위의 풍광을 그림에 영원히 담은 것처럼 지금 이 순간 느끼는 것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진다. 미술관을 한바퀴 돌고 나니 몸이 무척 지치지만 마지막까지 저마다 마음에 드는 화가들의 흔적들을 마음에 담아간다.
우리에게 남은 건 샹제리제 거리와 개선문. 비는 멈추었지만 바람이 세다.
거리로 가는 길, 튈르리 정원과 콩코르드 광장을 지나치며 파리를 정복한다.
해가 없는 흐린 날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유로이 길가에 앉아 커피를 즐기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우리도 샹젤리제 거리를 따라 걸으며 두 시간여 자유시간을 가지기로 한다.
저마다 갖고 싶은 옷이나 화장품 부모님과 친구들 선물 살 생각에 기대감이 가득한채로 흩어진다.
대장님은 그 사이에 아이들에게 줄 마카롱을 준비한다. 색색의 아름답고 자그마한 프랑스의 디저트 마카롱, 아이들이 받아들고 만면에 미소를 떠올릴 모습에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여섯시 반에 개선문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밥을 먹은 후 식당을 나서자 멈췄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한다.
왠만한 비는 그저 맞던 파리 사람들도 우산을 펼쳐들기 시작한다.
이미 해가 지고 거리에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급작스럽게 내리는 세찬 비에 개선문 야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바로 다음 일정을 진행하기로 한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어쩌면 이번 탐사의 하이라이트라고도 부를 수 있는 에펠탑.
에펠탑으로 올라가 파리 야경을 보기 위해 역시 티켓을 미리 예매해 두었다.
하지만 한 번에 우리 모두가 들어갈 수 없어 시간을 여덟시와 열시로 나눌 수밖에 없었다.
다함께 에펠탑에 올라가 파리의 밤을 한눈에 담지 못해 조금 아쉽긴해도 군말 없이 따라주는 아이들이다.
탐사 이후 처음으로 가장 많이 걸었던 날이었다.
여덟시 팀은 바로 에펠탑으로 출발했고 열시 팀은 비를 맞아 으슬으슬하고 지쳤기에 잠시라도 숙소에 들렀다가 다시 나오기로 한다.
열 명 정도의 아이들이 개선문에서 걸어서 에펠탑으로 출발한다.
다행히 내리막길이라 걸음이 빠르다. 어쩌면 에펠탑을 어서 보고싶다는 기대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인원수가 줄어드니 아이들끼리 인원을 세고 앞 사람을 더 잘 따라온다.
한없이 기특한 모습, 그리고 이 중 대부분의 아이들을 내일부터 못본다는 생각에 마음이 뭉글뭉글하다.
발과 다리가 많이 아프지만 에펠탑이 보이기 시작하자 절로 빨라지는 걸음이다.
높게 솟아 오른 철골 구조물에 노오란 조명이 비추는 모습이 센느강 너머로 선명하게 보인다.
초승달 위로 흘러가는 구름이 파리를 더욱 운치있게 만들고 있다.
커다란 엘리베이터가 사선으로 올라간다. 어떻게 이 철골 구조물 안에 엘리베이터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진다.
에펠탑으로 올라가는 건 순식간이다.
이전에는 흉물이라 치부받던 에펠탑이 오늘날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찾는 랜드마크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에펠탑 상층부, 바람 막을 곳 한 점 없는 곳이다.
아무리 추워도 카메라를 꺼내 파리의 야경을 담아야겠다.
저 멀리 우리가 걸었던 곳이 한눈에 담긴다.
처음 갔던 루브르 박물관부터 멀리 빛을 밝히고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
오르세 미술관과 가까이에 우뚝 솟아 도시의 중심부를 만들고 있는 개선문까지.
오늘 참 많이도 걸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자 노곤함을 뒤로하고 뿌듯한 마음이 생겨난다.
센느강은 잔잔하게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다.
하루만에 파리의 구석구석을 둘러본 아이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마지막 파리의 풍경을 새긴다.
비도 맞고 많이 걸어서 몸은 한없이 고단했지만 어느때보다 많은 것을 보고 알찬 하루를 보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다리는 아파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하다.
몇몇 아이들은 아름다운 이곳을 떠나기 아쉽다며 말한다.
“스무살 전에 유럽에 한 번 더 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직 아이들에게 스무살이라는 나이가 한참은 멀게 느껴지는 모양이다.
금세 성숙해져 부모님의 도움 없이 스스로 유럽 혹은 다른 곳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간 함께 지내는 법, 혼자 견디는 법, 어려움을 헤쳐가는 법 그리고 가족의 소중함을 그 어느때보다 많이 느끼고 배웠으니까.
삼 주 동안 열 두개국가를 돌았으니 무척이나 바쁜 여정이었다.
도시 자체를 제대로 즐기고 느끼기에는 아쉬움이 남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쉬움이 아이들을 떠나게 만들지 않을까.
이제껏 살아왔던 곳과 조금이라도 다른 곳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다면 또 다른 머나먼 세상이 궁금해지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