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국토순례 `용감한 아이들'
1999.02.03, 00:00<국민일보> | |
걸어서 국토순례 `용감한 아이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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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개학을 맞은 이승은양(12·서울 신계초등5)은 학교에 가자마자 친구들에게 방학 동안 있었던 일을 얘기하느라 바빴다.승은이는 지난해 12월31일부터 올 1월31일까지 한국탐험연맹 주최로 열린 `1999 국토 걸어서 횡단·종단 탐험'에 참가한 꼬마 탐험가. 동해 추암 해변에서 출발해 아우라지-가리왕산-청태산-횡성-용문-양평-서울-인천-마라도-제주도-부산-주남저수지-우포늪-구미-대전-안성-서울을 거쳐 임진각에서 해산하기까지 31박 32일동안 바다를 건널 때 배를 탄 것 외에는 줄곧 걷기만 했다.매일 10시간,40㎞ 이상 걷는 강행군을 했으니 걸은 거리를 모두 합치면 1천㎞가 넘는 대장정. “1월1일 밤이 제일 힘들었어요.강원도의 어느 분교 뒤에 텐트를 쳤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었거든요.나중에 들어보니 새벽에 영하 20도까지 내려갔대요.그래도 운 친구는 한 사람도 없었어요” 얼굴이 새까맣게 탄 승은이는 “그래도 견딜만했다”며 웃었다.지난해 여름방학중 탐험에 참가했던 경험이 큰 힘이 됐단다. 탐험기간 일과는 오전 6시30분~7시 사이 `기상' 구령으로부터 시작됐다.텐트 걷고 세수한 뒤 해가 뜨면 1시간 정도 걸었다.몸이 얼어있는 상태에서 식사를 하면 좋지 않기 때문.9시쯤 아침을 먹고 10시쯤부터 다시 행군.틈틈이 유적을 답사하고 지역특산물 조사,생태계 탐사,오리엔티어링(독도법 훈련),철새관찰 등의 시간을 가졌다.아이들이 가장 좋아한 것은 패러글라이딩이나 열기구 등의 항공스포츠 교실. 취사차량에서 따로 준비해 주는 아침 저녁과 달리 점심식사만은 아이들이 직접 해 먹었다.냄비에 밥짓는 데는 아이들 모두 선수가 됐다.한번은 일부러 아이들에게 인근 민가에 가 반찬을 얻어 오도록 한 일도 있었다.승은이는 네 집에 들러도 사람이 없어 실망하다가 다섯번째 집에서 반찬을 얻는 데 성공했다. 행군은 오후8시까지 이어졌다.잠자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일은 발씻기.탐험기간동안 아이들 13명을 인솔했던 강석우 탐험대장(32)은 “동상이 걱정돼 물통에 지하수를 받아와 조금씩 나눠 준 뒤 발을 씻게 했다”고 말했다.얼음물에 가까운 찬물이었지만,그 물조차 구하기 힘들 때는 준비해 온 물티슈를 요긴하게 썼다. 원성재군(14·언북중 1)은 “1월28일 밤부터 29일 새벽6시까지 잠 한숨 안 자고 행군해 서울로 들어오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그날밤은 서울에 폭설이 내렸던 때.“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걷는데 기분이 끝내줬다”고.체력에 자신있고 성격이 활달한 성재도 한번은 울음을 터뜨렸다.탐험일정 도중 부모님이 편지랑 양말·속옷을 보내 줬을 때.한국탐험연맹측이 `중간보급'이란 이름으로 마련한 깜짝이벤트였는데,덩치가 커다란 중2나 중3도 엉엉 울고 말았다. 신양수군(11·경기 용인 구갈초등 5)은 요즘 집에 돌아와서도 아침 6시30분이면 잠이 깬다.`대장님'의 `기상!'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다.양수의 장래 희망은 고고학자.앞으로도 기회가 생기면 언제든지 배낭을 둘러메고 나설 생각이다.어머니 박점순씨(40)는 “얼굴 곳곳이 터서 들어오는 양수를 보니까 눈물이 났다”면서도 “몸과 마음이 모두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고 아들을 대견해했다. /김민아 makim@kukminilb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