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네 시.
미미한 불빛조차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아이들은 눈을 떴습니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잠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제 정리가 일찍 끝난 터에 초저녁인 여덟시에 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대장님이 켜 주신 밝은 불빛 하나에 의존해
아이들은 텐트를 개기 시작합니다.
텐트를 모두 정리 한 후에는
시원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아침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웁니다.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아이들은 하루 밤 동안 자고 난 자리를 깨끗이 정리했습니다.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들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모아옵니다.
그러다 보니
완연한 아침의 기운은 아니더라도 어느새 하늘이 차츰 밝아옵니다.
오늘은 아이들이 ‘백복령’이라는 백두대간 줄기의 한 고개를 넘어 가는 날입니다.
백복령은 동해시에서 정선군의 임계로 넘어오는 구간으로,
꼬불꼬불한 오르막만 15km에 다다르는 버거운 코스입니다.
힘든 일정이기 때문에 일찍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한 것이지요.
대장님들이 출발 전부터 오늘 일정에 대해 지레 겁을 줬기 때문에
아이들은 잔뜩 긴장을 한 모습인데요.
어제 가볍게 몸을 풀었던 행군과는 다르게
오늘은 대장님들도 모두 긴장하여 빠르게 그리고 대원들과 함께 열심히 걷습니다.
아직 백복령에 오르기 전, 천천히 평지를 걸어
우리는 첫 번째 쉬는 곳인 달방댐에 도착했습니다.
총대장님이 차에서 틀어준 노래를 들으며 쉬다가도
“대장님 몇 km나 왔어요?”하며 잔뜩 궁금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입니다.
처음으로 힘든 행군을 해 본지라 두 발로 가는 걸음이 얼마나 되는지 매번 궁금한가봅니다.
힘들게 걸은 만큼 쉬는 시간마다 그 뿌듯함이 배가 됩니다.
쉬는 시간 물을 받을 때마다 아이들은 물의 소중함을 점점 더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의 양이 한정돼 있는 터라 한 번 받을 때 각자 물통의 반 정도를 채울 수 있는데
집에서는 마음껏 마실 수 있던 물이 이곳에서는 너무나 귀하게 느껴집니다.
충분히 휴식도 취하고, 갈증을 해소시키는 물도 받은 후
다시 열심히 걷기, 시작입니다.
조금씩 발걸음을 옮길수록 ‘백복령’이라는 표지판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는데요.
두 번째 쉬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부터는 동해시의 경찰관이 아이들을 에스코트해주었습니다.
경찰관 아저씨와의 동행은 숙영지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됐습니다.
경찰차 하나만으로도 우리 아이들이 더욱 안전하게 행군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열시도 안 되어 거의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정상을 4km 남긴 지점,
탁 트인 전경에 저 멀리 작은 집들과 논,밭이 보입니다.
참 많이도 올라왔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는데요
그 기쁨이 가시기 전에 대장님들이 준비한 간식이 등장했습니다.
심상치 않습니다. 단순히 박스가 아닌 아이스박스가 보입니다.
냉기를 뿜으며 우리의 두 눈 앞에 등장한 것은 여름철 아이들에게 최고의 간식인 ‘아이스크림’ 이었습니다.
아이스크림을 한 입씩 먹고 나니 갈증도, 더위도 어느새 물러납니다.
모든 대장들과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받은 후에도 열 개 정도가 남았습니다.
공평한 재분배를 위해 대장님과의 가위바위보가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선택받은 아이들은 주변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다시 한 입 베어 뭅니다.
속까지 선선해지는 아이스크림덕분에 조금씩 해가 나고 있지만 아이들의 에너지는 다시 재충전 됐습니다.
다시 대장님과, 친구들과 행군 대열을 맞춰 줄을 서서 힘차게 걷습니다.
오르막길의 연속, 길 우측으로 보이는 표지판 하나가 아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오르막차로 끝’
안도의 한숨과 기쁨의 환호성이 터져 나옵니다.
정상에 다다라 오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그 기쁜 마음이 두 배가 됩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보이는 ‘백복령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
드디어 정상이고, 내려갈 길만 남았다는 것은
우리의 숙영지와도 점점 더 가까워졌다는 말과 같습니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한낮, 작열하는 태양빛을 온 몸으로 받았지만
결국 우리는 백복령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최고의 점심 만찬을 마주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 스스로 밥 받는 일도 제법입니다.
차례차례 연대별로 줄을 서서 배식을 합니다.
점심메뉴는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뜨거운 국이 더울까 배려해주신 취사대장님 덕분에 시원한 콩나물 냉국과
소세지, 군만두와 맛있는 샐러드에 김치, 몸에 좋은 도라지 나물까지.
정말 최고의 만찬이 아닐까요.
오늘부터 우리아이들에게 잔반은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조금씩 남겨왔지만 본격적으로 잔반없는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밥 한 톨까지, 국물에 남은 콩나물 찌꺼기 하나까지 다 먹어야하지만,
조금 힘겹더라도 이를 통해 식사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백복령 비석 앞에서 한명씩 예쁘게 사진도 찍고, 정선 군 경계를 넘었다는 벅참을 안고
이제 본격적인 내리막길 산행을 시작합니다.
오르막길이 걷기에는 힘들지만, 내리막길에서는 긴장을 풀기 쉽기에 사고가 날 확률도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긴장해야하고, 주의를 기울여야하는 내리막길.
우리 아이들은 대장님들이 잔뜩 겁을 줬기 때문에 한참을 더 가야하는 줄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3km만 더 가면 오늘의 숙영지가 나오는 길입니다.
어제 텐트에서 아늑하다만 조금은 불편하게 잤다면,
오늘은 샤워도 깨끗이 할 수 있는 최적의 숙영지, 바로 백복령펜션입니다.
일정을 남 몰래 알고 있던 몇몇 아이들은 백복령펜션이라는 표지판이 나오자
“저기다!”라며 환호성을 지르고, 아이들의 배낭을 실어다주시는 트럭이 보이자 다시 한 번 미소를 짓습니다.
도착시간은 한 시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인 탓에, 뜨거운 한낮 시간대를 피하여 숙영지에 도착한 우리 아이들. 비록 많이 힘겹고 지치는 일정이었지만 도착 후에 그런 감정은 눈 녹듯 사라집니다.
드디어 아이들이 가장 고대하던, 깨끗이 씻을 시간입니다.
넉넉히 두 세 시간 동안 여유롭게 머리도 감고 목욕도 한 아이들은
처음 만난 것처럼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말끔히 씻은 모습으로 돌아온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바로 ‘모형 열기구’였습니다.
말 그대로 모형 열기구인데요.
우리가 탈 수 있는 열기구, 불을 붙이고 더운 공기가 그 안에 가득 차면 하늘로 뜨는 원리를 이용해 모형으로 제작하여 아이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연대별로 열기구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전에 다 함께 모여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서로 경쟁하듯 만들었는데요.
디자인을 중시하는 연대가 있는 반면 기술력을 중시하는 연대도 있었습니다.
하얀 비닐에 예쁜 그림, 하고 싶은 말들을 적으며 소원을 비는 아이들.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가장 단연은 먹고 싶은 음식이나 집에 가고 싶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림을 다 그린 후에는 테이프를 뜯어 꼼꼼히 비닐을 이어 붙이고 철사로 골격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렇게 각각 연대가 그들만의 개성이 담긴 열기구를 만들었고,
그러는 사이에 우리 친구들은 조금 더 돈독해질 수 있었답니다.
아이들이 정성껏 만든 열기구는 내일이나 내일모레, 좀 더 여유로울 때 날리기로 했답니다.
저녁 먹기 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지라 연대별로 함께 지내는 시간도 보냈고,
매일 매일 기록하는 일지를 쓰는 시간도 보냈습니다.
어느덧 저녁식사 시간입니다.
뜨끈한 오뎅국을 한 입 먹으니 하루의 피로가 모두 가시는 듯합니다.
반찬은 저녁에도 완전 매진입니다.
게다가 취사대장님들께서 아이들의 반찬이 모자르지 않을까 싶어
배식이 끝난 후 스팸에 계란후라이까지 구워주셨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우리 아이들 개개인이 속한 연대장님과 더 돈독해지기 위한 시간을 가졌는데요. 애로사항이나 각자의 속마음을 넌지시 내비치기도 했답니다.
그런 덕에 대장님들이 더욱 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내일 함께 있을 때 더욱 더 즐거운 우리가 될 것 같습니다.
강원도에 온 것이 실감이 납니다.
숙영지에 들어오면 더운 공기가 아닌 찬바람을 맞게 되는데,
오늘의 백복령 역시 서늘한 기운이 감싸옵니다.
점점 서울로 다가갈수록 여름의 밤은 무더워질 것 같습니다.
조금 춥지만, 여름의 서늘함을 최대한 즐기면서 서울로 걸어가야겠습니다.
이상으로 일지대장 하예슬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