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
어젯밤 아이들이 잠들었던 백복령은 해발 700m에 다다라 사계절 내내 보일러를 켜야 할 정도라고 합니다.
펜션에서도 여름이지만 에어컨과 선풍기 대신 보일러를 켜 놓고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짐을 챙겨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오니 시원하다 못해 찬 기운이 몸을 감싸옵니다.
온 몸이 벌벌 떨릴 정도로 추운 기온에 모두가 놀라며 집에서 챙겨온 긴 팔을 한 겹 더 걸칩니다.
여름에 입김이 나오는 풍경은 이 곳에서만 볼 수 있을 듯합니다.
여섯시에 기상해 어제와는 다르게 해가 완전히 떠오른 상태로 준비를 시작합니다.
아침 식사는 각 연대의 대표가 나와 눈치게임을 하는 것으로 정해졌습니다.
꼴찌로 당첨된 조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오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순서를 잊은 듯 친구들과 수다 떨기에 바쁜 모습입니다.
아침 식사를 배불리 먹고, 깨끗이 양치도 한 후 이제는 자연스럽게 출발 준비 완료.
여덟시가 되어 물도 받고 몸도 풀고
드디어 오늘의 행군도 시작됩니다.
어제 백복령, 아무리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을 행군하느라 지쳤을 아이들,
언제나 모든 길에는 오르막이 있다면 내리막도 있는 법이지요.
고생하며 오르막을 오른 덕분에 오늘은 평지와 내리막만으로 이루어진 수월한 행군 코스였습니다.
어제 대장님들의 입에서 ‘앞으로 밀착’소리가 지겹도록 나왔던 반면
오늘은 길이 평탄하여 그런지 대장님들이 큰 소리 내지 않아도 아이들이 알아서 잘 따라 붙고, 힘을 내서 더 열심히 걷습니다.
날은 조금 더웠습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볕이 쨍쨍하여 살이 빨갛게 익기에 딱 좋은 날씨.
대장님들은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이 썬크림은 발랐는지, 모자는 썼는지 다시 한 번 점검도 해 주니 부모님들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오늘의 간식은 무엇이 나왔을까요.
어디를 가든 인기 만점인 초코파이입니다.
아주 크고 넓은 터널, 그늘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과 함께 땀을 식히며 맛보는 초코파이는
평소에 먹던 그 맛이 아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는 느끼지 못할 최고의 간식이었지요.
아이들에게는 초코파이 하나가 그렇게 간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간식으로 에너지 충전을 한 후 다시 시작된 행군 길. 시간이 정오에 다다를수록 아이들의 그림자가 더욱 길어집니다. 다만 오늘도 우리 아이들이 위안 삼으며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뜨겁게 번지는 햇살만큼이나 좋은 날씨, 푸른 하늘, 멋진 풍경이었습니다.
높이 올라와서 걷는 행군 길의 주변 풍경은 아름다운 산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고도가 높아 꼭대기를 내비치는 산을 보고 있자니
조금만 더 걸으면 하늘에 바로 맞닿을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어제까지 날이 흐려 새파란 하늘을 보지 못했던 우리 아이들은
이제야 강원도의 진면목을 본 듯 연신 감탄사를 내뱉습니다.
꼬불꼬불한 산길을 내려가다 아이들이 또 한 번 놀란 것은 ‘평창’이라는 두 글자.
바로 직접 가고 있는 길을 확인할 수 있는 표지판 위의 글자입니다.
동해에서부터 조금씩 걸어올수록 마주치는 표지판에는 처음 보는 지역들이 하나씩 나옵니다. 오늘은 ‘평창’을 만났던 것이지요. 점점 더 도착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중간 중간 그늘에서 땀을 식히며 마침내 우리는 숙영지에 도착했습니다.
도착시간은 12시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점심식사도 없이 일찍이 도착을 한 이유는
약 14km만을 행군하는 아주 짧은 행군 코스였기 때문입니다.
생각보다 너무도 일찍 도착해버린 숙영지. 정말 도착일까, 반신반의하는 아이들의 모습이었지만 역시나 짐을 싣고 다니는 큰 트럭을 보며 도착지임을 확인하고 안도합니다.
오늘의 숙영지는 정선군 임계에 위치한 공터입니다.
도착 후 아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점심식사.
미트볼, 돈가스, 감자샐러드, 김치, 멸치볶음. 더불어 속까지 시원해지는 오이냉국으로 마무리. 한 낮, 우리 아이들은 어제처럼 오늘도 시원한 냉국으로 더위를 다스려봅니다.
오늘도 반찬을 남기지 않는 기특한 모습입니다. 이제 남기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도 잘 알고 먹을 만큼만 받은 후 편식 없이 모두 먹은 후 빈 그릇을 가져옵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날씨에 엊그제처럼 조별로 모여 스스로 텐트를 칩니다.
두 번째로 만들어보는 텐트에 제법 능숙한 손놀림과 서로를 도와서 만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모든 조가 텐트를 친 다음, 정리까지 마친 아이들은 지금껏 입어온 옷을 빨 준비를 합니다.
큰 대야에 물과 세제를 넣은 후 텐트 조별로 빨래를 시작합니다
세제를 풀어 놓은 물에 빨래를 한꺼번에 넣고 아이들이 직접 자기 발로 밟으며 빨아봅니다.
평소 집에서 세탁기가 자동으로 빨아주던 옷을 입어왔던 아이들은
자기의 발로 직접 밟아보는 것이 무척 신기한가 봅니다.
서로 자기가 밟아 보겠다고 너도 나도 발 벗고 물 속에 발을 담급니다.
덥다보니 차가운 물속에서 발을 담그는 일이 너무도 행복합니다.
두 발에 작은 체구로 하는 일이지만 온 몸의 힘을 실어 빨래를 하자
대야 너머로 아이들의 때 묻은 물이 흐릅니다.
몇 번을 더 헹구고 나서야 맑은 물이 나왔고, 깨끗해진 옷을 서로 힘을 합쳐 물기를 털어냈습니다. 혼자 물기를 짜기 버거우니 친구와 함께 양 쪽에서 빨래를 비틀어 젖은 옷들을 완전히 말려냅니다.
아직 햇살이 따스할 때 어서 빨리 빨래를 말려야 합니다.
숙영지 곳곳에 저마다의 방법으로 아이들은 옷을 널어놓았습니다.
도착 후 펴 놓은 매트가 뜨끈하게 데워져 깨끗해진 옷을 올려놓자 물기가 조금씩 날라갑니다.
여자 아이들은 텐트 네 면에 각각 옷과 양말을 널었고 다른 아이들은 천막에 빨랫줄을 널어 예쁘게 하나씩 정리했습니다.
따사로운 햇살 따라 아이들의 옷이 점점 말라옵니다.
아이들의 가방에서 무거운 짐이었던 빨래가 빠지자 가방 정리가 한층 가벼워집니다.
오늘도 연대별로 더욱 돈독해질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바로 ‘연대기 만들기’인데요.
지금껏 행군사진에서 태극기와 과천시기를 보셨는지요.
전체 행군대열에서 첫 번째, 두 번째 줄 아이들이 기를 들고 걸어왔다면
오늘 만든 연대기는 각 연대의 아이들이 돌아가며 행군 대열 사이사이에서 들고 걷게 됩니다. 그만큼 더 예쁘게, 멋있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크기 마련입니다.
연대별로 경쟁이 붙었습니다.
각 연대장님들은 아이들에게 ‘1등을 하면~’이라는 더 좋은 조건을 걸며 의욕을 돋굽니다.
2연대장님은 무려 자신의 신용카드를 걸었는데요.
그 덕분에 2연대 친구들은 울퉁불퉁한 매트 위를 벗어나 평평한 아스팔트로 가서 그림을 그리는 열정까지 보여줍니다.
서로 상대방의 연대기가 궁금하여 몰래 다른 연대로 와서 구경을 하고 가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평소엔 조용했던 친구들이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아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최고의 슈퍼스타가 되었습니다.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어느새 벌써 저녁식사 시간이 다가왔네요.
멀리서 풍겨오는 밥 냄새가 굉장합니다.
어떤 메뉴가 나올것인지가 아이들에게 가장 기대가 되는 순간입니다. 기대가 되다 못해 떨려오지요.
오늘이 중복이라는 사실은 다들 알고 계시죠?
아이들에게 따뜻한 백숙 한 입 먹여주지 못해 안타까워 하셨을 부모님들도 많이 계셨을텐데요. 이제 그런 걱정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이들 모두가 한명도 빠짐없이 푹 삶은 닭 반 마리와 따뜻한 국물까지, 그야말로 보양식을 맛보았습니다. 밥을 받는 아이들의 표정이 세상을 다 가진 듯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후식으로는 영양만점, 미숫가루 수박화채가 준비되었습니다.
행군 도중 끊임없이 생각났을 아이들의 머릿속 위시리스트.
그 중에 수박화채를 빼 놓은 친구들이 손에 꼽을 정도로 행군 중 ‘수박 먹고 싶어요’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저녁식사가 얼마나 행복했을지 대충 알 것 같으신가요?
배가 터질 정도로, 정말 너무 맛있게도 먹는 모습을 보니 대장들도 덩달아 마음이 행복해져옵니다.
행군은 오전에 끝났지만,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하느라 아이들의 하루는 오늘도 짧습니다.
오전시간 땀을 흘린 덕분에 조금은 찝찝한 기분.
머리도 감고 샤워도 할 수 있는 저녁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의 숙영지인 정선도 낮에는 뜨거웠으나 밤이 되자 서늘한 기운이 밀려듭니다.
찬바람에 머리를 말리고 난 후 아이들은 잘 준비를 합니다.
오늘 아픈 곳이 없었는지, 다친 데는 치료를 해야 하는지 의료대장님이 꼼꼼히 봐주시는 일로 하루가 마무리 됩니다.
내일은 조금 더 긴 일정입니다. 정선 아우라지까지 가는
내일도 오늘보다 더 꼼꼼히 아이들을 챙기는 대장단이 되겠습니다.
이상으로 일지대장에 하예슬이었습니다.
참 우리 딸이 있는 2연대장님 멋지신데요.
지갑까지 화끈하게 여실줄 아시고... ~~^^
다들 마지막 날까지 화이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