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사이, 아무도 모르게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자다가 차가운 빗방울에 잠이 깨버린 대장님들은
아이들이 자고 있는 텐트로 비가 새지는 않을까
새벽녘 급하게 텐트에 조치를 취해놓았습니다.
아침에도 많은 비가 내려 행군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모두가 노심초사하며
다시 잠이 들었던 새벽녘이었습니다.
아침 여섯시, 평소라면 잠을 자고 있을 시간에 우리 아이들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조금씩 떨어지는 빗소리, 약간은 추운 날씨에 아이들은 대장님이 깨우지 않았는데도 한 두명씩 텐트 지퍼를 열고 고개를 내밉니다.
모두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이들이 일어나서 정리를 시작하자마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습니다. 다행입니다.
오늘 아침은 평소와 조금 다른, 특별한 메뉴입니다.
프라이팬에 갓 구워 따끈한 토스트에 딸기잼 치즈, 햄 그리고 양송이스프까지.
커피, 초코, 딸기, 흰 우유로 무려 네 가지 맛의 우유까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흰 우유를 잘 먹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인기가 꽤나 많았습니다.
든든한 아침식사를 마무리 한 뒤 행군을 시작합니다.
오늘은 길이 좋습니다. 임계의 시내구간을 조금만 벗어나니 자전거길로 이어졌습니다.
차량이 많이 다니지 않아 아이들이 행군하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오늘은 길 옆으로 잔잔한 강줄기가 따라 흘러갑니다.
비온 뒤라 그런지 오늘의 하늘 역시 푸르고 맑았습니다.
약 2km의 짧은 행군을 하고 나서 높은 산 아래, 강변가에서 연대별로 줄을 섰습니다.
오늘은 처음으로 연대별 오리엔테이션(OT)을 하는 날입니다.
연대별로 함께 걷기 전에 출발 조건이 걸렸습니다.
바로 연대이름, 연대가, 연대구호를 만들어 총대장님에게 검사를 받아야 하는 일입니다.
총대장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모든 아이들이 갖가지 방법을 총 동원합니다.
연대이름을 맛깔나게 만들고, 그에 맞는 구호와 노래를 직접 만들어 보는 아이들.
그리고 율동까지 겸해서 하는 연대도 눈에 띕니다.
혼자라면 부끄러운 일이라도 모두가 함께 하다 보니 창피함도 잊어버리고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는 친구들입니다.
1연대부터 통과해 차례대로 줄줄이 출발합니다.
길을 알려주는 첨병 대장님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과 연대장님이 스스로 길을 찾아 가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이 그려진 지도를 받았습니다.
초코파이와 물도 받고 아름다운 강 길을 따라 걸어봅니다.
오늘도 날이 덥습니다. 썬크림과 모자, 팔 토시 모두 꼼꼼히 챙겨 걷습니다.
연대별 OT가 처음인 아이들, 연대 내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아이들은 대장님의 역할을 대신하며 경광봉을 들고 차량통제도 해봅니다.
평소에 걷기에 힘든 어린 친구들을 위해 보폭을 맞춰주는 배려깊은 아이들, 대장님의 모습도 연대별 OT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꽤 더운 날씨지만, 큰 산이 만들어주는 그늘 따라 걷다 보니 시원함이 온 몸을 감싸옵니다.
연대별 OT의 최대 장점은 걷는 속도도, 쉬는 구간도 모두 대장님과 대원들의 재량이라는 것입니다. 힘들면 쉬고 빨리 걷고 싶으면 좀 더 속도를 내면서. 때로는 앞에 가는 연대와 경쟁이 붙어 더 빨리 걸어 앞서가는 연대를 앞지르기도 합니다.
꼬불꼬불한 산길, 강 따라 걸으며 한 시간 쯤 갔을까.
‘구미정’. 지원대장님들이 아이들을 맞아줍니다.
여러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가 되기도 했던 경치가 빼어난 곳이랍니다.
꺾어질듯한 절벽, 무성한 나무 사이로 구미정의 기와가 빼꼼히 아이들을 맞아줍니다.
쉬지 않고 걸어온 아이들, 그늘을 찾아 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답니다.
바로 연대별 사진 찍기 미션. 오늘의 미션은 ‘섹시하게’ 찍기!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과 부끄러워하는 아이들이 조금 많아 연대원들 모두가 같은 포즈를 취하는 것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열심히 사진찍기에 임해봅니다. 원망의 아우성과 한바탕 웃음 후 누구보다 빨리 그늘로 들어가 미지근해진 물 한 모금 삼킵니다.
더위를 식힌 후 구미정에서 또 하나의 미션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몸으로 말해요’라는 게임인데요.
대장님이 제시어를 아이들에게 말해주면 몸으로 그 단어를 표현해 일렬로 서있는 다섯명에게 차례로 전달한 후 마지막에 연대장님이 그 단어를 맞추는 게임입니다.
제시어는 난이도가 높은 속담부터 간단한 동물묘사까지 대장님이 내키는 대로 아이들에게 말해줍니다.
그렇게 실패한 연대가 생기다 보니 1등으로 가던 연대는 한참 후에 출발하고, 늦게 출발했던 아이들은 1등이 되는 역전의 풍경도 볼 수 있었습니다.
연대장님은 아이들을 위해 최신가요를 틀어줍니다. 신청곡을 받고, 함께 따라 부르며 행군의 지루함을 덜어냅니다. 큰 산 아래에서 모두가 목청껏 부르는 노래는 메아리가 되고, 산이 되받아쳐 다른 연대에게 들려옵니다.
가는 길 잠시나마 강변에서 쉬며 물놀이도 즐깁니다.
발을 물에 담그거나 작은 돌멩이로 수제비를 뜨는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물에 잠깐 담근 발의 시원함이 온 몸을 타고 흐릅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그 전에 또 하나의 미션이 기다리고 있었는데요.
연대원 VS 연대장의 대결이 펼쳐졌습니다.
부대장님이 내는 퀴즈를 모든 연대원들이 각각 연대장님과 한 번씩 풀며
문제를 맞춘 사람이 상대방에게 낙서를 하는 미션이었습니다.
처음엔 겁내면서 “대장님, 점 하나만 찍을게요”하던 아이들이 게임이 진행되자마자 악을 쓰고 갖가지 색깔로 연대장님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대장님이라고 질 수 없습니다. 얌전하게 게임을 할 것 같던 아이들이 기를 쓰고 낙서를 시작하자 대장님도 아이들의 얼굴에 수염을 그리고 안경을 씌워줍니다.
게임이 끝날 때 즈음 모든 아이들과 대장님은 눈만 마주쳐도 웃음이 터지는 모양새를 갖췄습니다.
대장님에게 이기지 못해 얼굴에 낙서를 그리게 된 아이들은 “또 하면 안돼요?”라며 아쉬움을 표했습니다.
드디어 점심식사 시간입니다.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인 ‘떡볶이’가 나왔답니다. 거기에다 계란도 하나씩. 군만두 그리고 시원한 과일주스까지 있으니 행사에서 분식집은 그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맛있게 밥을 먹고 나니 해가 중천에 떠 있어 바로 행군하기가 힘이 듭니다.
오늘, 우리는 처음으로 있는 오후 행군을 위해 오침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마을회관의 거실과 시원한 바람이 부는 천막 아래에서 눈을 붙입니다.
아이들은 첫 오침이다 보니 자라는 대장님의 말에 어리둥절한 모습입니다.
하지만 눕자마자 아이들은 한 명씩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한 시간이 넘게 자고 일어나니 오전 행군동안 쌓인 피로가 모두 가시는 듯합니다.
다시 출발할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대장님들이 깨워도 잘 듣지 못하는 걸 보면 꽤 깊게 잠이 든 모양입니다.
한 시쯤 점심을 먹고 오침을 하고 일어나니 어느새 4시입니다.
높은 산에 있으니 해가 산 아래로 내려갔기에 그늘이 만들어져 행군이 수월해졌습니다.
이번에도 전체 행군대신 연대별로 걸었답니다.
아이들은 저녁시간까지도 연대별행군이라는 말에 꽤나 기뻐합니다.
단체 행군보다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죠.
출발은 네 시, 제한 시간은 일곱 시 반.
남아 있는 거리는 약 12km.
쉬엄쉬엄 걸어도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아이들은 대장님과 마지막 행군을 만끽하며 걸어갑니다.
길가 옆으로 좁게 흐르던 계곡이 점점 불어나 강으로 만들어 집니다.
강바람이 점점 더 시원해지고 커다란 산 따라 해가 져 그늘은 더 짙어집니다.
저 멀리 ‘아우라지’라는 표지판이 보입니다.
바로 오늘 우리의 숙영지인데요.
아우라지는 정선에 있는 한 지명으로 정선아리랑의 기원이 되는 곳입니다.
두 남녀가 서로를 그리워했으나 만나지 못해 한이 됐다는 전설을 가진 곳으로
우리가 자게 될 곳에도 서로를 그리워하는 남녀의 동상이 보였답니다.
정선아리랑 전수관 옆의 넓은 잔디밭이 오늘 아이들이 텐트를 치고 잘 장소입니다.
텐트 뒤로는 넓은 강이 흐르며 시원한 물소리를 만들어 냅니다.
두 남녀가 만나지 못했던 아우라지, 이제는 큰 초승달이 걸려있는 다리도 만들어져있답니다.
숙영지로 들어가기 전, 아이들은 아우라지 배에서 연대별 사진을 마지막으로 찍으며
오늘의 행군을 마무리합니다.
드디어 멋진 숙영지에 도착.
붉게, 그리고 예쁘게 해가 지고 있는 풍경을 뒤로 하고 아이들은 텐트에 짐 정리를 마칩니다.
오늘은 아이들이 텐트를 치지 않았습니다.
간밤 내렸던 비에 젖은 텐트를
해가 쨍쨍 내비쳤던 오후에 몇몇 대장님들을 큰 친구들이 도와 숙영지에서 텐트를 말리고, 직접 치고는 아이들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행군 후 바로 저녁식사가 가능했습니다.
식사는 햄, 춘권, 무말랭이, 멸치 등 역시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 투성이입니다.
먼저 도착한 연대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친구들을 기다리는 동안
텐트 안에서 일지를 정리합니다.
아이들이 매일 쓰고 있는 일지는 나중에 집에 가서 다시 돌이켜볼때 큰 재산이 될 것 같습니다. 기록하는 것만큼 추억을 표현하는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비록 힘겹게 한 글자 한 글자 채워가는 아이들이지만 말입니다.
오늘도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습니다. 행군 후 땀으로 범벅돼 찝찝했던 기분이 다시 상쾌해졌습니다.
계곡에 온 듯 주변에서 들려오는 물소리가 정겹습니다.
아이들 숙영지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단체로 캠핑을 온 줄 알며 부러운 눈빛으로 보고 갑니다. 오늘은 특히나 모든 풍경이 아름다웠습니다. 연대별로 걷는 길부터 시작해 숙영지는 지금껏 잤던 곳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벌써 일정의 반이 지났는데 아이들은 이제 완전히 적응했는 듯합니다.
오늘 진행한 연대별 OT덕분에 더욱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일도 오전에는 연대별 OT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아이들이 전체행군이 아니라는 말에 무척이나 좋아할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선합니다.
남은 기간에도 생생한 사진, 일지 전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상으로 일지대장에 하예슬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