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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걷고 있냐?

by 박재영 posted Aug 0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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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걷고 있느냐?
파랑 들판에서 활짝 팬 벼들이 바람에 스적거리는 소리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하늘을 나는 구름이 언덕에 큰 그림자를 떨구고 지나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도시에서만 살아온 너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다행이 자연과 함께 할 이런 기회가 있어 전혀 새로운 것들을 느끼고
사랑하며 마음에 담고 살아갈 수 있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지도를 펼쳐놓고 재영이가 지친다리를 끌고 지나갔을 길들을 쭉 살펴본다.
작은 유격대의 반짝이는 눈빛이 더러는 풀섶에 더러는 농부의 굽은 허리 안에
숨어있음을 본다. 이 번에 네 눈에 비친 모습들은 평생 아름답게 간직 될 것을 믿는다.

너희들의 소식은 하루의 일과와 간단한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보고 있다.
제주도 산굼부리 같던데, 거기서 무작위로 찍은 사진에 네 얼굴이 나오더라.
집에서 출발 한지 며칠되지 않았는데 꼬지지 하더라. ㅎ
그리고 누릿재를 넘어갈 때 원영이 뒤에 있었다면 분명 너일거야.
좀 흐릿해서 정확히 구분은 안되더라만 그때는 무지 단정하고 멋있더라.

너는 중학생이니 동생들 잘 보살펴 주리라 믿는다.
원영이도 자주 보게 되는지 모르겠다. 아마 지금쯤은 가족에 대한 너의 행동지침이
법칙으로 생겨나 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생활계획도 마찬가지겠지.

외할머니 어제 오셨다. 엄마와 둘이만 있던 집에 외할머니가 오시니 더 사람이
사는 집 같다. 이제 며칠 남지 않았구나. 남은 기간동안 당연히 잘 하리라 믿는다.

또 보자.
2003년 8월 9일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