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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땠니?

by 정귀련 posted Jan 0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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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 귀련아!
오늘은 어땠니?
용화사에서 찍은 사진 속에서 우리 딸의 모습을 발견했다. 어깨 쭉 펴고 앉아 있는 모습이 대견하더구나. 다른 아이들 다 허리 굽혀 쉬는데 뭔가 궁금한 것이 발견된 듯한 우리 딸의 모습이 무척 예쁘더라. 우리 딸 궁금한 것은 가만히 두고 못 있잖니? 호기심도 많고 탐구심도 많고 알고 있는 것도 알고픈 것도 많은 우리 딸 지금 가는 곳마다 궁금증이 많을 텐데 힘들어서 그 호기심을 다 채우고나 있는지 모르겠구나.
오늘 네가 걸어온 길 (밀양-청도-대구) 어느 방향으로 걸었는지 확실히 짐작가지는 않지만 내 짐작이 맞다면 <밀양-유천-청도-화양-이서-팔조령-대구> 길이 맞다면 하동에서 하양가는 길에 지나왔던 길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엄마가 아빠랑 결혼하기전에 외할아버지댁에서 8년을 출퇴근했던 길이기도 해, 엄마는 팔조령과는 반대방향(북동쪽)으로 대구가는 <청도-남성현-남천-경산-대구또는 하양>길을 주로 다녔지만 팔조령도 대구로 가기 위해 종종 넘나들었단다. 팔조령 고갯길은 꼬불꼬불 굉장히 높고 가파른데 그 길을 우리딸이 걸어서 넘었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야. 그 길을 차로 넘으면서 멀미를 하기도 했었는데, 그러면서도 걸어서 넘어볼 생각은 못했는데, 우리 딸이 그 길을 넘는다면..... 정말 황홀하고 감사할 일이야.
팔조령의 경치 참 멋졌는데, 숲길도 아름답고. 엄마의 20대가 생각난다.
우리 딸 너무 힘들어서 경치 구경할 여유없지?
엄마가 잠깐 옛 생각이 났다. 한가지더 밀양에서 청도로 갈때 유천이란 지역을 지나왔니? 오른쪽으로 강이 길게 이어져있는 곳. 경상남도 밀양이라고 쓴 곳과 경상북도 청도군이라고 쓴 경계지점도 통과했겠지? 그 곳을 막 지나면 왼쪽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었을 텐데, 산과 산사이 골짜기도 있고 오른쪽은 강이 길게 경남으로 이어져가는 곳, 좀전에 말한 그 산으로 난 길 1시간 정도 걸어가면 아담한 마을이 나오는데 그 곳이 엄마가 처음으로 출근한 직장이 있는데......
예전에 지금 네가 걷는 것처럼 청도에서 20분 버스를 타고 와서 1시간 배낭메고 걸어올라 다녔다. 월요일엔 올라가고 토요일엔 내려오고, 가방속에는 일주일치 식량을 담고......
벌써 20년 전의 이야기이다.
귀련아,
지금의 기분 어떠니? 탐험 잘 나선 것 같니? 친구는 많이 사귀었고? 전화 속 네 목소리 너무 짧더라. 네 목소리가 녹음되는 때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렇게 짧게 말하고 마니? 하지만 짧은 네 목소리 속에 아주 밝고 명랑한 우리 딸의 모습이 있어서 정말 감사하더라. 너는 몰랐겠지만 사실 엄마 국토순례단 이야기가 뉴스에 나왔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이 없지만 내 자식은 꼭 저런 행운(도보로 국토순례)을 안겨줄 거라고 생각했었다. 아마도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였을거야. 선택받지 않고는 이런 탐험에 동참할 수 없지 않겠니? 우선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하고 뭔가 할 수 있다는 의지가 필요하고 부모와 대화가 되어서 그 뜻을 받아줘야만 가능하지 않겠니? 부모가 보내고 싶어도 자식이 거부하면 못가는 것이고,자식은 가고 싶어도 부모가 용기를 내지 못해도 못가는 것이며, 학교와 공부에서 해방되지 못해도 게임과 TV에서 헤어나지 못해도 결코 행할 수 없는 일이니까 우리 귀련이는 <선택받은 아이>라고 엄마는 생각해. 디지몬만화에서 나오는 7명의 선택받은 아이들보다도 더욱 선택받았다고 생각해. 물론 너와 함께 지금 탐험에 나서고 있는 아이들 모두가 말야.
우리 예쁜 맏딸 귀련아.
힘들겠지만 이겨내렴. 힘든 것은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을 생각하며 이겨내도록 해보렴. 그러노라면 아마도 즐거움이 큰 날들이 될거야.
어젯밤에 대장금 녹화해뒀다. 우리 딸 집에 돌아오면 보라고.
오늘 밤도 푹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렴. 그게 가장 중요해. 우리 딸 힘들까봐 그런가 하늘이 따뜻한 날씨를 계속 선물하네. 우리 딸이 복덩어리라서 그런가봐.
내일 또 소식 전하자.
엄마는 항상 우리 귀련이를 사랑한단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