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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딸 혜련(유정)에게

by 정혜련 posted Jan 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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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아, 오늘은 어디까지 걸었니?
수원은 안개랑 미세(작은 알갱이)먼지가 이틀째 하늘을 뿌옇게 만들고 있는데, 네가 걷고 있는 남쪽은 날씨가 괜찮은지 모르겠다.
맑고 파란 하늘이 보이는 날이면 좋을텐데....
얼마나 힘드니? 사진과 전화 속 네 모습은 언니 오빠들 보다도 더 씩씩하고 의젓해서 네가 제일 큰 언니 같아 보여.
유정아, 힘들 땐 대장님께 힘들다고 떼도 쓰고 언니 오빠들에게 부탁도 좀 하고 그러렴. 넌 평소에도 네 혼자 알아서 하더니 그 곳에서도 너무 혼자 참고 애쓰려고 하지마. 네가 그럴수록 엄마는 더 안쓰러우니까.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날까봐 장난도 안치고 친구들과 싸워야 할 때 참고 그러는데 너무 그렇게 참고 혼자 삭히려고 애쓰지 말고 네 느낌과 감정을 드러내어 말해도 괜찮아. 아무도 흉보지 않을거야, 또 흉 좀 보면 어떠니?
넌 아직은 조금 어린양을 부려도 되는데 너무 의젓해서 엄마가 염려돼.
자기 나이에 맞게 힘들 땐 힘들다고 말해도 괜찮아.
집에서 언니를 통해 듣던 것과 실제로 국토 종단탐험을 해보니 어때?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고 대신에 즐거운 맘으로 탐험을 즐기렴.
함께 하는 언니 오빠들이랑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고 얘기도 많이하면 좋겠구나. 네가 어리다고 언니들이 같이 안 놀아줄까 좀 염려는 된다. 우리 유정이 속은 중딩 언니만큼 구렁이가 들어있는데 그 언니 오빠들이 그걸 잘 몰라서 어린애 취급만 하는 지도 모르겠다.
몸은 초등생, 생각은 중등생인데 약간 불균형이긴하지?
유정아, 추운 곳에서 몸으로 우리나라를 느끼며 애쓰는 동생을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공부하겠다던 언니가 며칠만에 게으름을 피웠다. 그래서 엄마가 청소도 시키고 혼내줬다. 네가 오면 사준다고 치킨 먹고싶대는 것도 안사주다가 열심히 공부하는 듯해서 조그만 닭 1마리 사줬더니 그것 먹고부터는 공부를 안하고 약속을 안지키는 구나. 마치 우리가 길렀던 병아리들처럼 말야.
그래서 엄마가 오늘 많이 화가 났다.
우리 유정이가 함께 있었더라면 언니도 공부에 집중하고 화난 엄마 맘도 풀어줬을 텐데, 피아노도 쳐주고 애교도 부려줄텐데...
오늘은 외할머니 수술도 있는 날이었다. 다행하게도 수술은 잘 되고 편안하시댄다. 어쩌면 할머니께서 우리집에 와 계실지도 몰라. 네가 있어야 할머니가 심심하지 않으실텐데......
유정이 밥먹는 것은 어떠니?
너무 꿀맛이라고 많이 먹으면 우리의 계획이 차질이 생기겠지요?
네가 오면 주려고 토종닭은 냉동실에 보관중이다.
요즘 아빠가 날마다 일찍 오시는 중이다. 비록 10시는 넘지만...
오셔서 운동도 열심히, 우리 유정이 탐험일지 화일 정리도 열심히 하고 계셔. 네가 돌아오면 선물로 주시려고...
가방이 무겁지 않니?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사진 속에서 보면 가끔 잠바는 입지 않고 있더구나. 가방이 무거워 걷기가 쉽지 않을 거야. 그럴 때면 노래를 불러보렴. 엄마랑 함께 부르곤 했던 노래들을.....
언니들이랑 유정이 자랐을 때 모습도 상상해보고....
오늘은 얼마나 많이 지쳤을까?
어느 하늘아래에서 지금쯤 잠들어 있겠지?
우리 예쁜 아가, 예쁜 꿈 꾸면서 편안히 잘 자거라.
엄마는 항상 우리 유정이를 사랑한단다.
사랑해.
               2008.1.8.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