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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

by 김진영 posted Jul 26,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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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외박한 아빠.
벗과 함께 비 오는데 우산 받쳐 들고
굽이진 계곡과 울창한 숲에 파묻힌 산길을 따라
서울 동쪽 끝자락에 있는 아차산에 오르니
탁 트인 시야로
물이 불어 넘실대는 황토빛 한강과 회색빛 주변건물이 어우러져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인단다.
답답한 마음과 숨이찬 모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시원함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어느새 그리운 얼굴이
빗방울에 아롱져 아지랑이처럼 눈망울을 적시고
아빠의 뇌리와 가슴에 와 닿는다.
상처가 미처 아물기도 전에
고단한 몸으로 행군에 참여한 아들,
네 상처만큼이나 아빠의 마음도 덧날까 염려스럽다.
누구나
하기 싫어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혼자의 힘으로만 해야 하는 경우가 있고, 때로는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혼자의 힘이 아닌 다른 이의 도움을 받으며, 작지만 다른 이에게 생각을 보태는 경우도 있단다.
서로가 생각과 뜻을 모으면 보다 큰일도 해낼 수 있고, 더 힘든 어려움이 닥쳐도 이를 극복할 의지와 용기가 생긴단다.  힘들고 고달프지만 용기를 내어 함께 하는 아이들과 서로 돕고 의지하면 완주할 수 있을 거야.  돌아오면, 네가 참여한 이 행사가 인생의 작은 밑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철없던 아이,
어느 덧 훌쩍 커버린 열 여섯 아들 마음속에
멀리 있지만 가까이 있는 아빠로,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하지만 자식을 사랑하고 있는 아빠로,
목석같지만 부드럽고 믿음이 가는 아빠로
자리하기를 바란다.
우리가족 빈자리에
건강한 모습, 달라진 네 모습이 다시 채워지기를
보고픈 마음을 달래며
그 날을 기다리마.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