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새재의 숨은 유적 찾기
엄동설한에 둘도 없는 자식들을 보내시고 자식 걱정에 잠 못 이루실 날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노심초사하는 마음으로 저희의 일지를 매일 챙겨보시는 부모님들에게 얼마나 정성껏 대원들의 모습을 전해드리고 있을지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어제 저녁에 잠자리는 편하셨는지요~ 저희들은 6시에 기상해서 세면을 하고 식사를 하는 규칙적인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대원들이 좋아하는 장조림 반찬에 다시 추가배식의 줄이 이어집니다.
30분 정도 걸어 문경도자기 전시관에 도착했습니다. 좋은 도자기를 굽기 위해서는 양질의 사토, 물, 땔감이 필수적입니다. 이곳 문경에서는 산악지대에 사토광맥의 매장량이 많고 계곡에 맑은 물, 우거진 숲은 막대한 분량의 땔감이 확보되어 있기 때문에 도자기가 발달 할 수 있었습니다. 전시관 내부에는 사발, 대접, 접시, 종지, 제기 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서민들의 생활용기인 민요가 대부분이어서 서민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대원들은 아름다운 색채와 다양한 모양의 도자기와 찻잔을 하나씩 찬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오늘날까지 대를 이어 온 장인들의 사진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도자기의 우수성과 전통성을 이어가는 것이 대한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자부심을 느끼게 해 줍니다.
유교문화 전시관에서는 선비들이 사용했던 다양한 벼루와 책들, 연적, 붓이 전시되어있었습니다. 대원들은 말로만 들었던 서경, 주역, 맹자 등을 직접 보고 지금과 다른 교과서를 보고 신기해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책들이 모두 한자로 되어있었고 중국의 역사와 성현들의 말씀, 시들을 모아 둔 책들이라는 한 대장님의 설명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합니다. 다른 나라의 우수한 것을 배우는 것처럼 우리의 것을 소중하게 생각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함을 배웁니다.
외유내강, 극기복례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선비들의 개인의 자기수양을 넘어선 공동체를 위한 그들의 철저한 관리를 본받아 옛길탐사를 통해 배워가는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경 용연리 백자 공방에서는 흙을 수비하는 시설과 점토굴을 저장하고 다지는 시설, 건조시설, 그릇을 성형하는데 필요한 물레공이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고 있어 대원들이 도자기 만드는 과정을 자세히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관에서 빠져나와 인자한 모습을 한 갓을 쓴 선비의 상을 찾아갔습니다. 역사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끊임없이 미래로 창조하는 아름다운 선비의식과 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광장이었습니다. 선비를 중심축으로 하여 둥근 광장 좌우에 새겨 진 벽화를 통해 전쟁 시 농민을 선동하고, 학문을 닦고, 과학기술을 연구하고, 서로 학술 교류하며, 민심을 듣고, 농사를 장려하는 선비들의 모습을 짐작 할 수 있었습니다.
대장님들은 문경새재를 넘기가 힘들거라고 겁을 줍니다. 본격적으로 수풀이 우거져 새들도 날아 넘기 어려운 고개라는 의미에서 이름 지어진 문경새재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갈평리 전투, 6·25동란, 임진왜란, 당교전투, 동학과 의병이 남긴 사담이 서리어 있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때문에 곳곳에 많은 유적들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그 고을의 안녕과 평안을 바라는 장승마을의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도 안전하기를 빌어봅니다.
이곳에는 사극 드라마 왕건과 대조영의 촬영지가 있었습니다. 혹여나 촬영현장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해봅니다. 대원들은 TV에서 보던 그 장소를 실제로 볼 수 있다니 마냥 신기해했습니다. 몇몇 대원들은 의상을 갈아입고 있는 한 출연자에게 다가서서 사진을 찍자고 졸라보기도 합니다.
영남 제 1문인 주흘관의 휘날리는 깃발이 아직 이곳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왠지 모를 엄숙한 분위기가 맴돕니다. 새재에 오르는 길 여기 저기에는 여러 유적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것들을 하나 둘씩 찬찬히 보며 새재를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험난하지 않습니다. 나그네의 숙소인 조령원 터, 신구 관찰사 선정비, 도적질을 하기 위해 도적들이 숨어 있었다는 커다란 마당바위, 일제시대 때 에너지를 얻기 위해 우리나라 사람을 강제 동원해서 송진을 채취한 소나무의 V자 상처, 김시습의 시가 있는 주막, 신구 경상도 관찰사가 관인을 주고받았다는 교구정을 곳곳에 있었습니다. 유적들은 과거를 보기 위한 선비나 보부상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왜적들의 행로였음을 알려 줍니다. 대장님은 천천히 새재를 걸어 오르며 여러 문화 유적이 보일 때마다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행인의 발길이 잦은 곳에 길손들에게 산불 예감과 자연보호 중요성을 알리고 경각심을 일깨우려 했던 “산불됴심”비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이런 문구를 사용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조곡약수에서 시원한 물을 돌아가며 나누어 먹었습니다. 선조들도 우리와 같이 이 험난한 새재를 넘을 때 이곳에서 목을 축이면서 쉬었을 것을 생각하니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곡관을 지나칠때에는 시가 있는 옛길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선비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많은 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대원들도 여기저기 펼쳐져 있는 높은 절벽과 소나무 한 폭의 진경산수화와 같은 아름다운 경치를 즐겨봅니다. 문경새재 아리랑이라고 써있는 비석에 버튼을 누르자 산 전체를 노래소리가 감쌉니다. 많은 아리랑이 있는 것은 알았지만 문경새재 아리랑은 모두에게 생소합니다. 그것이 신기한 몇몇 대원들은 혹여나 바위 뒤에 할아버지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눈으로 확인해 보기도 합니다.
우리는 길을 따라 올라 우리는 장원급제길을 만났습니다.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세 길이 있습니다. 추풍령과 죽령, 조령이 그것입니다. 그 중에서 추풍령으로 가면 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으로 가면 미끌러진다고 하여 과거를 보는 선비들은 죽령을 넘어갔다고 합니다. 이곳을 지나면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설에 이곳 문경을 옛날에는 문희라고 불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그 옆으로 나있는 금의환향길로 걸었습니다. 장원급제의 영광을 안고 어사화 쓰고 고향으로 가기위해 그 동안의 가난하고 지난했던 인고의 좁고 험한 길이 아닌 명예와 부귀가 보이는 평탄하고 넓은 대로였습니다. 우리 모두 좀더 큰 모습으로 부모님에게 금의환향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조금씩 숨이 가파지기 시작했습니다. 눈으로 하얗게 변해버린 산길 끝에 제 3문인 조령관에 도착하였습니다. 문경새재의 정상에 오른 기쁨을 단체사진으로 기억해 둡니다.
허기진 배는 주먹밥으로 채웠습니다. 취사조 대장님들이 대장님들을 놀리기 위해 주먹밥 안에 생쌀과 커피 등을 숨겨 두었습니다. 대장님들이 당혹해 하는 이런 모습들이 지친 대원들의 얼굴에 웃음을 가져다줍니다. 조령문을 넘어서면 경상북도와 충청북도의 도경계입니다. 조금씩 부모님들의 품과 가까워진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서둘러 새재를 내려옵니다.
숙영지에 도착하여 지친 발을 씻고 간단한 세면을 합니다. 배식 전에 대장님들은 간식을 상품으로 걸어 노래 부를 것을 권합니다. 간식을 얻기 위해 대원들은 용기를 내어봅니다. 연대장님들도 덩달아 신이 나서 따라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웃음 가득한 노래 소리와 함께 오늘 하루도 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