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언아~
집 떠난 지 벌써 열흘이 다 되어가네. 그 기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는 않는 걸 보면 다시 볼 거라는 기약이 있어 그런 게지. 네가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면야 30일 아니라 세 달, 3년인들 못 떨어져 있을까?~^^
청소기를 돌리면서 비어 있는 네 방을 한 번씩 둘러보고 나온단다. 식물들 햇볕 쪼이라고 열어 놓은 겹창문 하나를 아빠는 오늘도 기어이 닫아 놓았네... 우c...
‘소통’이 부족한 게지. 한 공간에 살면서도 이리 소통을 안 하고 산다. 수십 번을 다시 여는 수고를 하고서야 결국엔 말씀 드렸다. 식물들 배려해서 열어 논 거니 제발 좀 닫지 말라고. “오~” 하더니 이젠 닫지 않으신다. 사람이 소통하며 산다는 게 이리 어렵다. 표현하지 않으면 속에 있는 생각을 어찌 다 알겠니?
돌아오면 네가 본 것들 많이많이 떠들어라. 우린 경청할 준비하고 있을게 ㅋㅋ
비어 있는 네 방에 보일러를 한 번씩 틀어 놓았더니, (이건 이유를 잘 모르겠다. 네가 당장 올 건 아니지만 한 번씩 들렀을 때 그냥 네 방에서도 온기가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심리이긴 한데 뚜렷한 이유는 엄마도 잘 모르겠구나. 굳이 찾으려니 네 대신 식물들이라도 좀 따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이번엔 아빠가 왜 틀었냐고 묻더구나. 그냥 그 방 들렀을 때 발이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꺼 버리더라. 그래도 아빠 안 계실 때 들러서 또 켜 놓는다 ㅋㅋ
저번에 카톡으로 잔소리하고 나서 괜히 그랬다 싶었다. ‘어련하겠느냐’고 왜 믿어주지 못했을까? 지 알아서 할 건데. 그 정도 판단력을 네가 지니지 못했을까? 미안하다. 떨어져 있을 때라도 잔소리는 하지 않아야겠다.
엄마는...
열 네 살인 네가, 스물 네 살인 네가, 마흔 네 살인 네가, 일흔 네 살인 네가, 그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번 유럽 탐사도 그 밑바탕을 마련하는 작업이라 생각해서 선뜻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고. 엄마 나이가 되어서야 말이다. 류시화 시집 제목이 그렇게 간절하게 와 닿는단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래서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면 속상할 때가 많단다. 내 아들인 너는 그런 시행착오를 좀 덜 겪었으면 싶다. 지금처럼 발로 다니면서 직접 네 눈으로 보기를, 또 지금처럼 모든 세상을 직접 만나 볼 수는 없으니 돌아와서는 책읽기를 게을리하지 않기를... 너무 큰 바람이니?^^ 살아보니 그렇더라. 학원가서 점수 올리기. 그게 무에 그리 중요할까? 대신 부지런히 책 읽어 주기를 바랐으나 그렇게 성에 차지는 않았네. 그것도 네가 알아서 할 일이다만 네가 시간을 영 허투루 쓸 때는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겠더라. 지금도 미래에도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니까. 행복지수를 높여 주는 게 책이라는 걸 엄마도 많이 늦게 알았단다.
어제 카톡대화 중 “나는 뭐” 기억하니? 그렇게만 되면 타인에 대한 비난의 시선 대신 이해하고 용납하고 배려하게 되겠지. 누굴 위해서냐고? 바로 널 위해서...
엄마는 이번 여행을 통해 “매 순간 순간 의미 있게 살아야겠다”는 것만 얻어 오면 충분하단다. 삶은 순간의 합이니까. “지금 여기”에 충실해라.
사랑한다,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