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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둘도 없는 내 동생들아!!
인터넷에 편지를 직접 남기려고 했지만 편지 쓰는 곳 자체가 시각장애인인 나는 아예 쓸 수도 없도록 되어 있어서 이렇게 글을 남길 수밖에 없구나.
이 글이 너희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만 꼭 전달되어서 나의 이 몇 마디가 무더위와 폭풍우 속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우리 윤선이, 형선이에게 작은 힘이나마 되었으면 한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너희들에게 편지를 쓰는 게 내 생전 처음인 것 같다. 그 동안 누나가 되어 너희들에게 더 잘 해 주지 못한 것 용서해 다오.
아 참! 윤선이랑 형선이 너희 둘이 올려 준 인터넷 편지랑 전화 목소리 잘 보고 들었다. 듣는 순간 가슴이 찡해졌어. 늘 서울에 있기 때문에 사실상 떨어져 살지만 그래도 우리 윤선이랑 형선이를 그렇게도 험난한 국토종단길에 보내 놓고 보니 더욱 마음이 허전하구나. 너희들도 집 생각 많이 나고 많이 힘들지? 나도 알아.
그렇지만 얘들아, 사람은 한 번쯤 익숙한 것들과 잠시 떨어져 보는 과정도 꼭 필요한 거야. 그래야 평소에는 알 수 없었던 더없이 익숙한 것들의 소중함을 알 수 있기 때문이지. 독일의 어느 작가가 쓴 "푸른 꽃"이라는 작품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어.
옛날 아주 먼 곳에 늘 행복하기를 꿈꾸며 이상향을 동경한 한 남자가 있었대. 그 남자는 어느 날 자신이 바라는 행복한 세계를 찾아 여행을 떠났지. 그런데 그 날 밤 남자가 잠을 자고 있을 때 장난꾸러기 요정이 와서는 그의 신발 코를 반대 방향으로 돌려 놓고 그 남자의 꿈 속에 나타나 앞으로 계속 가면 네가 찾는 세계가 나온다는 말만 하고 사라졌어. 다음 날 남자는 요정이 시킨 대로 앞으로 계속 갔고 마침내는 자기가 꿈꾸던 행복한 세계에 도착했어. 그런데 자신이 와 있다고 생각한 그 행복한 세계는 바로 그가 떠나왔던 자리였어. 알고 보면 그저 자기가 살던 곳으로 되돌아온 것이지.
너희들도 집 떠나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과 생활하는 것이 많이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고 꼭 완주해서 무사히 집에 돌아오려무나. 그러면 너희도 앞의 이야기 속의 남자처럼 너희들 곁에 있는 세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될 거야.
사랑하는 내 동생들아! 8월 9일 경복궁에서 꼭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 할머니랑 할아버지, 그리고 내가 마중 나갈게. 마지막으로 너희들에게 힘이 될까 싶어 영국 시인 퍼시 비시 셸리의 "서풍에 부치는 노래"(함석헌 옮김)라는 시를 여기에 적어 보낸다. 아무쪼록 이 편지가 잘 전달되어 악천우 속에서 고생하는 너희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한다. 그럼 이만 쓸게.
항상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하길 기도하며
윤선이와 형선이를 똑같이 사랑하는 누나가

서풍에 부치는 노래
1
오, 사나운 서풍아, 너 가을 산 숨이야,
네가, 볼 수 없이 올 때 그 앞에 몰리는 시든 잎새
술사(術師)에게 쫓기는 유령의 떼와 같으니
누르끔, 꺼무스름, 헤멀끔, 불그스름,
염병맞은 무리처럼 도망치는 것들이로구나,
오, 너 날리는 씨알들을 몰아내는 놈아,
네가 그들을 캄캄한 겨울 이불 속에 몰아 넣으면,
거기서 그들은 차디찬 주검인 듯 깊이 누워 있다가
마침내 새 맑은 너의 봄 누나가 찾아아, 피리를 불어
싱싱한 새 싹을 대기 속에 떼지어 먹일 때,
꿈꾸던 대지의 들과 언덕은
생명의 빛과 향기로 넘쳐 흐르는구나.
사나운 영(靈)아, 안 가는 데가 없는 놈아,
들부수면서 또 간수하는 놈아, 들으라, 오, 들으라!
2
아, 네 흐름 위에는 무서운 하늘의 흔들림 속에,
쏟아지는 거친 구름이 낙엽과도 같으니,
너는 하늘과 바다의 얼크러진 가지에서
비와 번개의 사자들을 흔들어 떨어졌구나,
형상없는 네 큰 물결이 푸른 물낯 위에는
미쳐 돌아가는 미내드의 머리에 뻗쳐 번쩍이는 터럭같이
그와 같이, 아득한 지평선의 저 끝에서부터
높은 하늘의 천장에까지 치닿아,
몰아치는 폭풍우의 머리칼 같이 흐트러졌구나,
너, 숨지려는 이 해의 구슬픈 노래야,
숨막히는 이 밤은 휘넓은 그 무덤의 천장이라,
너는 증기의 엉킨 힘으로 이를 버티었구나,
그 빽빽한 기압 속으로부터는
캄캄한 비, 번개, 우박이 쏟아지고야 말겠구나, 오, 들으라!
3
너는, 푸른 지중해를 흔들어
그 여름날 긴 꿈에서 깨운 놈아,
수정 같은 흐름의 돌아드는 노래를 들으며,
빠이이 포구의 부석도(浮石島)를 의지하고 그는 잠이 들었어라.
푸른 이끼 향기로운 꽃이 한데 우거져,
보는 눈도 어지러워 못 견딜 듯 현란스러운,
날뛰는 물결대로 어지러이 흔들리는,
옛 궁성과 탑 그림자처럼 꿈 속에 보며!
야, 네 오는 길 열기 위하여
평탄한 대서양은 갈라져 벼랑처럼 일어서고,
저 밑에는 바다의 꽃, 또 해조류들의
생기없이 흐느적이는 잎새조차도
네 소리를 알아듣고 갑자기 낯빛을 변하고
무서워 떨며 넋을 잃는구나, 오, 들으라!
4
내 만일 마른 잎새이어서 너를 탈 수 있었더라면,
내 만일 흐르는 구름이어서 너와 같이 날릴 수 있었더라면,
네 힘 밑에 불리는 대로 날뛰는 물결이어서,
그 힘찬 천성(天性)을 나누어 너만은 못하더라도
자유로울 수 있었더라면, 아, 이 억제할 수 없는 놈아!
또 그렇지 않으면 내 일찍이 어렸을 때와 같이
너의 짝이 되어 하늘가에 헤맬 수라도 있었더라면,
푸른 공중에 달음치는 너의 걸음을 따라서 넘는 것이
공상으로는 아니 뵈던 그때가 될 수 있었더라면,
내가 이처럼 속이 타 너와 다투어가며 기도를 하지는 않았을 것을,
오, 나를 일으키렴아, 물결처럼, 잎새처럼, 구름처럼!
나는 인생의 가시밭에 엎어졌노라! 피를 흘리노라!
너처럼 그렇게 억세고, 날쌔고, 자부하는 놈을,
이 인생의 무거운 짐이 얽매고 머리를 굽게 하였구나.
5
나를 네 거문고만 만들렴아, 저 숲처럼
내 잎새도 그 잎새아 같이 떨어지기로서 무엇이냐!
너의 힘있는 하모니의 커다란 소리에
나나 저나 같이 절절한 가을 노래를 내리로다.
적막은 하련만 아름다운 가을 노래를,
무서운 영이여, 내 영이 되라! 네가 나여라, 이 사나운 놈아!
내 죽은 시든 잎처럼 몰아, 몰아서,
우주 사이에 휘날리어 새 생명을 주라!
그리하여, 부르는 이 노래의 소리로,
영원의 풀무에서 재와 불꽃을 날리듯이,
나의 말을 인류 속에 넣어 흩어라!
내 입술을 빌어 이 잠자는 지구 위에
예언의 나팔 소리를 외쳐라, 오, 바람아,
겨울이 만일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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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사랑하는 동생들에게 누나가 쓴다. 최윤선 최형선 2005.08.05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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