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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로종주
2005.11.30 11:59

6일째(1.19)

조회 수 2447 댓글 0
 물 흐르듯  
어머님, 아버님들 오늘도 아이의 얼굴이 눈에 밟히시죠? 보낼 때는 '고생 좀 해보고 사람이 되어서 와라.'하고 보냈겠지만, 아이들 걱정에 불편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셨겠지요. 밥은 잘 먹고 있는지, 한데서 자다가 감기는 걸리지 않았는지, 화장실은 제대로 가는지...... 지금 이곳은 낙동읍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쓰고 있는 모자가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셌답니다. 날이 그렇게 추운 것은 아니었지만, 바람이 너무 불어서 온 몸이 떨리더군요. 그래도 아이들은 잘 걷는 답니다. 물집이 생겨도 걷고, 무릎이 아파도 걷고...... 이제는 뒤로 쳐지거나 하지 않더군요. 뒤에는 워낙 무서운 대장들이 대기하고 있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걸음에 익숙해진 듯 아주 잘 걷는 답니다. 오늘은 오리엔테어링이 있었습니다. 뭐 오리엔테어링이라고 해봤자 길 따라서 주욱 걸어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강가의 오솔길을 그대로 걸어가면 되는 것이니, 어려운 것은 없고, 다만 인솔하는 대장 없이 가는 것이 평소와 다른 것이지요. 사실 제대로 하려면, 칼과 성냥, 지도와 나침반만 주고서 산 한가운데 떨어뜨리고, '알아서 목적지까지 내려와라.' 하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아이들이 무슨 특수부대도 아니니 심각하게 할 필요는 없지요. 너무 쉬워서 싱거운가요? 이번 오리엔테어링은 혼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대대끼리 모여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길을 얼마나 잘 찾아서 오느냐를 보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뭉치고, 서로 챙겨주느냐를 보는 것이지요. 상품은 초코파이와 귤, 초콜릿. 상품에 눈이 어두워져서 저 혼자 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그것은 괜한 걱정이더군요. 잘 못 걷는 아이는 서로 부축해가며 서로가 서로를 떨어뜨리지 않고 열심히 걸었습니다. 인영이는 물집 때문에 걷기 힘들어도 왕 언니, 왕 누나 노릇을 잘하고, 승호나 승재는 아주 날아다니더군요. 명건이는 이상한 길로 들어섰다가 거의 꼴찌로 들어오고,(자신의 말로는 진정한 탐험을 위해서 라지만, 그것은 그다지 신빙성이 없어 보입니다.) 잘 못 걷는 준혁이나, 준현이는 서로 부축해가며 잘 걸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를 챙겨주면서, 서로를 채워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한 녀석이 따돌림을 당한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오리엔테어링의 아름다운 모습에 좋았던 기분이 갑자기 가라앉았습니다. '이 녀석들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악마를 또 깨우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에 온 몸의 기름기를 다 빼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정보만 믿을 수도 없고,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굴리는 것은 그만 두었습니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나요? 일단은 아이들은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했지요. 앞으로는 그런 일이 또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없겠지요?

욕심이 과하면 눈앞이 흐려지고, 자기 재주만 믿다보면 제 풀에 꺾이는 법. 물 흐르듯이 살아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물은 항상 흐릅니다. 물은 고이면 썩지요. 부족하면 스스로 채웁니다. 필요한 곳에는 아낌없이 대주지요. 물은 제 살을 갈라 배가 갈 수 있도록 합니다. 자연스럽게, 쉬지 않으며, 항상 채워주지요. 너무 자연스러워 그 존재가 잊혀질 수가 있지만, 없으면 물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지요. 강가를 걸으면서 서로를 채워주는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이들 사이에 도는 불미스러운 정보는 무엇일까요? 강가를 걷는 아이들을 보면서 물 흐르듯 살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꼭 필요하면서도 겸손하고 아낌없이 주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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