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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로종주
2005.11.30 12:03

마지막날(1.24)

조회 수 2621 댓글 0
 벌써 이렇게 컸니?  
숨이 막히고, 사람보다 자동차가 많이 보이고, 산과 들보다는 포장도로가 많은 것을 보니 서울 땅을 밟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귓가에는 아직 적응하기 힘든 경상도 사투리가 남아있는데, 어느새 경기도 땅이고, 금방 서울에 와있습니다. 시간이 금방 흐르는군요. 힘들게 힘들게 걸어왔는데 어쩐지 조금 아쉬운 생각도 드는군요. 그만큼 아이들에게 부족했기 때문일까요?

내일이면 영남대로 종주도 끝나는군요. 내일이면 경복궁에서 아이들과 헤어져야 하겠지요. 그리고 저도 집으로 가겠지요. 그 동안 힘든 날들이었습니다. 추운 날씨에 10일이 넘도록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걷고, 아침 먹고 걷고 점심 먹고 걷고, 저녁 먹고 걷고...... 하루 종일 걸었습니다. 한, 두 명이 아닌 팔십 명이 조금 안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 동안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계속 걷고 많은 생각을 하는 가운데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란 노래가 많이 생각났고, 많이 불러보았습니다. 탐험대가 군대하고는 다르지만, 힘든 걸로 치자면 군대와 비교도 할 수 없지만, 어쩐지 군대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속엔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아이들이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던 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설레이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걷는 중엔 '괜히 왔다.'라는 생각도 했겠지요. 대장들이 무섭게 굴기라도 한다면 속으로 많은 원망도 했겠지요. 다 큰 아이들도 아니고, 한창 어리광을 부릴 나이이지만 집을 떠나서 긴 시간동안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이, 스스로 고생을 한다는 것이 군대와 비슷할까요? 어른들이 그런 말을 자주 하지요. '군대를 갔다와야지 사람이 된다.'고 집을 떠나서 고생을 하는 것이 고마움을 알고, '나'만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보다는 '우리'를 안다는 것. 뭔가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 해본다는 것. 그러한 것들이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자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 것인데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도, 그냥 웃어넘기지 못하고, 화도 내고, 속으로 원망한 적 많았습니다. 인터넷 작업을 하다가 컴퓨터가 다운이 되거나 인터넷 연결이 제대로 안되면 노트북 컴퓨터를 그 자리에서 박살내고 싶은 충동. 예 느꼈습니다. 단체생활에서 이기적인 행동은 규제한다는 명목 하에 아이들에게 걷었던 초콜릿과 육포, 그  밖에 여러 간식거리들...... 정말 먹고싶었습니다. 너무 먹고싶어서 몰래 빼다 먹을까 하고 망설인 적도 있었습니다.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문제를 항상 만들고 다니는 녀석들에게 '집에나 가라고.' 윽박 지른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편지를 홈페이지에 올리는 작업을 하면서, 이름 안 쓴 녀석, 비룡체, 지렁이체 등 알아보지 못할 필체를 구사하며 편지를 쓴 녀석, 이모티콘의 남발을 비롯하여 문법과 맞춤법이 틀린 녀석...... 이런 녀석들의 편지를 올리지 말아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요. 아이들에게 장난도 치고, 놀린 적도 있습니다. 시간에 쫓겨, 컴퓨터가 맛이 가서...... 이런 저런 말이 안 되는 이유로 아이들의 편지나 일지를 늦게 올린 적...... 세어 보면 수없이 많습니다. 아이들의 일지를 보면서, 보노보노, 수오대마왕, 정우용준장혁빈탐크루즈, 꽃미남, 해리포터 등 다른 대장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만, 일지에 저에 대한 이야기가 없으면 서운했습니다. 아이들이 '오늘도 새벽까지 수고하십시오.'하면 어쩐지 서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밤하늘을 보며 담배만 태운 적도 있었습니다. 사진 찍는 기술도 시원찮아서 사진도 제대로 못 찍고, 못 올려서 부모님의 속을 태운 적 많습니다.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는데 며칠이 걸렸습니다. 다른 대장들처럼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장난도 치고 싶었지만, 해가 떠 있을 때에는 뒤에 쳐진 애들 뒤치닥거리하고, 해가 지면 제일 먼저 노트북을 들고, 콘센트를 찾아나서는 제 모습이 어쩐지 처량해져 몰래 소주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밖에도 많은 잘못을 하고, 실수도 했지요. 뭐...... 뒤돌아보면 별 것도 아니고, 그냥 슬쩍 넘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아쉬움이 많습니다. 제가 뭔가 부족해서...... 덜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런 아쉬움이 남는 것일 테지요. 항상 이번에는 잘해보자, 열심히 해보자. 아이들에게 잘해주자 하고 하루에 몇 번씩은 마음을 먹지만, 어쩐지 그것이 잘 안 되는군요. 아이들 이름도 잘 모르고, 제가 맡은 아이들을 잘 챙겨주지 못하면 스스로에 대해 화가 나서 인상만 쓰고 다닌 적도 많았습니다.(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카리스마가 넘친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힘들었지만, 재미난 일들이 많았습니다. 가슴 찡한 일도 있었고...... 팔조령을 넘다가 비를 맞으며 애 태운 일도 있었고, 대구에서 실시된 특수작전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지요. 아이들이 다 자고 난 뒤에 몰래 나가서 소주 한잔으로 스트레스를 녹일 때의 그 느낌...... 아이들이 볼까 몰래 숨어서 피우는 담배 맛이란....... 문경새재 넘을 때 무슨 막걸리가 그렇게 먹고 싶은지...... 충주를 걸어가며 눈이 내릴 때는 조금 불안하기도 했고...... 술에 취에 시비 거는 아저씨도 있었고...... 뭔가 부족한 듯한 얼굴로 간식거리를 달라고 말하는 선아, 왕 언니 인영이, 마술로 대장들을 즐겁게 해주는 충하(몇 가지만 가르쳐 달라고 해도 안 가르쳐 주더군요.) 아는 것도 많아서 먹고싶은 것도 많아 보이는 재우, 작아도 당찬 재호, 대장들을 챙겨주기도 하지만 구박도 하고, 잔소리도 하는 혜원이, 일지나 편지 등 글쓰는 일이라면 기가 막히게 하는 준혁이, 어머니 가게에 죽 먹으러 오라는 혜선이(그 대가로 강원도 감자 한 박스를 요구하더군요.) 언제나 재미난 말과 행동으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강원도 사나이 명건이, 목소리만 박경림같은 정현이, 장래희망이 백수건달이라던 슬비, 짬밥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승은, 승호, 승재 남매, 귀여운 우리 딸 민경이, 무식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먹어대는 범준이, 수운이...... 참 재미난 녀석들도 많았고, 골 때리는 녀석들도 많았습니다.

내일이면 그런 녀석들과 헤어져야겠지요.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군요.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더 잘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한심스럽습니다.('더 잘해준다.'가 정답이겠지요.)
매일 걷기만 하는 지루하고, 힘든 나날들이었지만, 지금까지 이겨낸 아이들이 대견합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과 함께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아이들에게 못해준 것이 많아서 미안하고, 별 볼일 없는 대장을 따라줘서 고맙기도 하고...... 어머님, 아버님들. 내일 아이들을 만나면 꼭 안아주시고,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해보십시오. 분명히 아이들은 전에 보다 훨씬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녀석들...... 정말 멋진 아이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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